‘참여’라는 말 너머의 현실, 데이터가 드러낸 민주의 민낯
주민참여예산제도는 지방자치의 핵심 축 중 하나로 꼽힌다. 이 제도는 지방자치단체의 예산 편성과정에 지역 주민이 직접 의견을 제안하고, 우선순위에 따라 예산이 실제 배분되도록 하는 구조를 가진다. 행정과 시민 사이의 거리 좁히기라는 측면에서 주민참여예산은 명분과 목적 모두 분명하다.
하지만 ‘참여’라는 단어가 실제 어떤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참여율은 몇 퍼센트인지, 특정 계층이 독점하고 있지는 않은지, 다양한 지역의 균형이 확보되고 있는지, 제안된 의견이 실제로 예산 편성에 반영되는 비율은 얼마나 되는지 등… 실질적인 ‘참여의 질’을 검증하려면 구체적인 숫자와 기록이 필요하다.
그러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바로 각 지방자치단체가 공개한 ‘주민참여예산 운영 및 집행 관련 공공데이터’다. 참여 건수, 참여자 수, 예산 반영율, 제안 채택률 등의 데이터를 통해 단순한 행정 홍보가 아닌 참여의 실체를 분석할 수 있다.
실제 지자체에서 제공하는 주민참여예산 데이터를 바탕으로, '참여'가 얼마나 현실에 뿌리내리고 있는지를 객관적으로 확인해본다. 더불어 이를 통해 앞으로 제도가 보완되어야 할 방향도 함께 제시한다.
주민참여예산제도와 데이터 공개의 의미
주민참여예산제도는 행정의 투명성과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핵심 정책으로, 2011년 지방재정법 개정에 따라 전 지자체로 확대 적용되었다. 법적 근거가 마련된 이후 각 지자체는 예산 편성 전 주민 의견을 수렴하고, 일부 항목에 대한 우선순위를 주민 투표나 회의를 통해 결정한다.
이 과정에서 생성되는 데이터는 단순한 숫자 이상이다.
- 제안 건수
- 참여 인원 수
- 성별 및 연령별 참여 비율
- 실제 예산 반영률
- 제안 채택 후 사업 이행률
이와 같은 항목들이 각 시·도 또는 기초자치단체의 홈페이지나 정보공개포털(data.go.kr), 주민참여예산 웹포털(yesan.seoul.go.kr) 등을 통해 일부 공개된다. 최근에는 국민권익위원회에서도 주민참여예산 운영의 공정성과 효율성 분석 자료를 연 1회 발표한다.
특히 서울시는 구 단위까지 데이터 구조를 갖추고 있으며, 예를 들어 “강서구 2023년 주민참여예산 제안 총 1,402건 중 최종 채택 84건(채택률 약 6%)”, “전체 참여자의 58%가 50대 이상”이라는 식의 세부 수치까지 제공한다.
이러한 데이터는 행정의 ‘형식적 참여’가 아닌, 실질적 참여의 수준을 드러내는 지표로 기능한다. 단순히 ‘많은 사람이 의견을 냈다’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다양한 배경의 주민이, 제안을 했고, 그것이 현실화되었는가’를 숫자로 증명하는 것이다. 이는 행정기관에게는 제도 개선의 근거가 되고, 시민에게는 참여 동기 부여로 작용한다.
실제 참여율 분석: 숫자로 드러나는 불균형
지자체들이 매년 제공하는 참여예산 데이터는 흥미로운 양면성을 보여준다. 전체 제안 건수는 매년 증가하는 추세지만, 정작 참여자의 분포나 실질적인 제안 채택률은 매우 편향된 구조를 보이고 있다.
서울시 기준, 2023년 주민참여예산 참여자 수는 약 14만 명이었다. 이는 서울 전체 인구의 약 1.4%에 해당하는 수치다. 그러나 구 단위로 좁혀보면 이 수치는 훨씬 낮아진다. 예를 들어 A구에서는 주민 40만 명 중 실제 참여자는 2,500명 수준으로, 전체 인구 대비 0.6% 수준이다.
게다가 참여자의 연령대 편중이 심각한 수준이다.
이는 제안의 다양성과 미래지향적 안건 구성에 제약을 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지역 간 편차도 크다. 강남구, 서초구, 마포구는 제안 건수와 채택률이 높은 반면, 동대문구, 도봉구, 금천구는 상대적으로 참여 건수가 적고, 채택 비율도 낮다.
이러한 수치는 단순히 인구 차이나 행정 역량의 문제가 아니다. 참여 경로 접근성, 온라인 플랫폼 활용 가능성, 홍보 방법의 차이, 행정의 의지와 주민 신뢰 수준 등 복합적인 요소가 개입되어 있는 결과다.
공공데이터는 이러한 구조적 불균형을 들여다보는 창이다. 특정 지역에서 해마다 동일 인물군만이 제안서를 내는 패턴, 특정 나이대만이 참여하는 반복성, 실제 예산으로 이어지는 비율이 낮은 제도적 병목 현상을 모두 확인할 수 있다. 참여는 증가하고 있으나, 그것이 ‘대표성 있는 참여’인지에 대한 질문이 필요하다.
채택률과 사업 이행률, 실질적 반영의 한계
주민이 제안한 예산이 실제로 채택되는 비율, 채택된 제안이 실제로 집행되어 완료되는 비율은 주민참여예산의 실질적 효과를 평가하는 핵심 지표다. 그런데 많은 경우, 제안 채택률과 사업 이행률 사이에는 큰 간극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서울 중랑구의 2022년 참여예산 데이터를 보면, 총 1,218건의 제안 중 67건이 채택되었고, 그중 실제로 집행되어 완료된 사업은 42건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예산 부족, 행정 절차 미완료, 부적합 판정 등으로 미실행되었다. 이는 채택률 5.5%, 이행률 기준으로는 약 3.4%에 해당하는 수치다.
사업이 채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실행까지 이어지지 않는다면, 주민의 신뢰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해당 사유가 주민에게 명확하게 전달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공공데이터는 이 과정을 기록하고 있지만, 해당 이유가 ‘미집행’으로만 처리되는 경우가 많아 투명성 확보에 한계가 존재한다.
또한, 사업의 실질적 영향력도 평가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동 어린이 놀이터 보수”가 실행되었더라도, 그 결과가 실제 어린이 이용률을 얼마나 높였는지, 안전 만족도는 개선되었는지 등 2차 성과 데이터는 대부분 집계되지 않는다.
즉, 참여예산이 단순히 ‘의견 수렴 창구’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실제 시민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후속적으로 평가하고 피드백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이것이야말로 공공데이터가 단순 기록을 넘어 평가 도구가 되는 지점이다.
주민참여예산 데이터의 활용성과 앞으로의 방향
주민참여예산 관련 데이터는 그 자체로 중요한 의미를 가지지만, 시민 주도의 데이터 해석과 활용이 함께 이루어질 때 그 진가가 발휘된다. 단순히 행정기관이 연말 보고서 형태로 제공하는 숫자에 머무르지 않고, 시민이 데이터를 분석하고 재구성하며, 참여 구조의 문제점을 되짚는 과정이 필요하다.
일부 지자체에서는 이미 이러한 시도를 시작했다. 서울 마포구에서는 시민 데이터 분석 동아리를 통해 참여예산 제안 패턴, 채택률, 지역별 균형 등을 시각화한 리포트를 주민 총회에 제출했고, 이를 기반으로 다음 해 운영계획이 조정되었다. 전라북도 완주군에서는 제안자의 만족도 조사와 사업 결과 보고서를 통합해 정성+정량 통합 평가모델을 시범 운영하고 있다.
앞으로는 공공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시민 숙의 기반 플랫폼이 더욱 확대될 필요가 있다. 단순히 제안만 하는 것이 아니라, 데이터에 기반한 토론, 평가, 우선순위 설정 과정까지 지역 주민이 주도적으로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중심에는 투명하게 공개된, 활용 가능한 공공데이터가 있어야 한다.
결국 주민참여예산의 성공은 제도 그 자체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시민이 데이터를 이해하고, 참여하고, 변화를 만드는 구조에 개입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참여의 진정한 완성은 기록이 아니라 연결이고, 그 연결의 중심이 바로 ‘데이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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